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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도장 찍다'의 의미

2018. 8. 28. 10:13 | Posted by 텅빈그릇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분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도장 찍혔습니다.(엡1:13)
 

헬라어 어원으로 본 '도장 찍다'는 도장 찍힌 대상이 도장 소유자의 소유물임을 공증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이 집적거리지 못하게 막다라는 의미입니다. 위 말씀은 우리가 약속의 성령으로 도장 찍혔음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소유이며 사탄이 자기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고대로부터 도장은 반지 모양의 형태로 만들어져 손가락에 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단 도장이 찍히면 결코 그 내용이 변경될 수 없음을 나타내었습니다. 또한 권력자가 자신을 대신하여 파견하는 이에게 도장을 주어 보낸다는 것은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또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창41:42는 "파라오가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 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행2:33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으셔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받듯이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 또한 파라오에게서 반지를 선물로 받습니다.

여기에서 인장 반지(signet ring)로 번역된 히브리어 טבּעת [ṭabba‛ath ; 탑바아드]는 '파다, 새기다, 관통하다'라는 뜻의 טבע [ṭâba‛ ; 타바]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고대에는 계약서가 점토판에 내용을 새긴 것이었는데 그 판에 반지를 딱하고 치면 인장이 새겨지게 됩니다. 살아있는 짐승에게 불에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으면 그 짐승의 존재 안으로 인장이 새겨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요셉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에게서 인장 반지를 받으셔서 그것으로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 우리의 존재 안에 그리스도를 새겨넣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념에 따르면 약속의 성령으로 도장 찍히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도장 찍으시는 것은 우리의 일생동안 지속되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을 계속 먹어보면 '구원하는 복음'이라 하셨지, '구속하는 복음'이라 하지 않으셨음에 깊은 인상을 받아야 합니다.

지방교회, 그 영-생명 주시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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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님을 먹고 마시며 누리는 것을 배울 때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된다.

물질적인 세계에 있는 많은 것이 영적인 것들의 상징들이다.

예를들면 빛은 우리의 빛이신 주님을  상징하고
음식과 음료는 우리의 음식과 음료이신 주님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생명은 영적인 생명을 상징한다.

우리의 물질적인 생명은 먹는 것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고 또한 운동과 수고를 통해 건강을 얻어야 한다.

영적인 생명은 한층 더 그러하다.

우리가 주님을 먹음으로 그분의 자양분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 살아나게 된 것과 같이, 우리는 건강해지기 위해 영적인 훈련과 수고를 해야 한다.

영적인 훈련 곧 생명의 훈련은 우리의 영적 `체조`이다 [딤전 4;7].

우리는  기름 부음의 느낌이나 그 영에 따라 행하는 것이나 혹은 주님과 교통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영적 훈련이다.

지방교회, 생명의 변화와 교회의 건축 메시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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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각 방면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고, 히브리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레위기를 해설해 놓은 책입니다.

도표를 통하여 히브리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각 방면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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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주님을 누리며 쓴 시 (1)

2018. 8. 4. 15:02 | Posted by 텅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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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그대가 믿지 않습니까?(요14:10상)
 

벧전1:2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바에 따라 선택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히1:8-9는 "아들에 관해서는 '오, 하나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은 아들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시는 것입니다. 또한 행5:3-4는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령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밝혀줍니다.

결국 아버지, 아들, 성령 모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계시합니다. 그런데 이 셋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비밀 중의 비밀인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 계시는 이른바 상호내재는 영원 과거부터 시작하여 영원 미래까지 지속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그 영 안에서 존재하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그 영 안에서 존재하시며 그 영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존재하시는 이것, 즉 신격의 셋이 공존하시며 서로 안에 내주하시는 것을 상호존재(coexistence), 상호내재(coinherence)라고 합니다.

교회사학자 필립 쉐프(Philip Schaff)는 그리스도, 하나님, 성령이 분리된 세 하나님이 아니라 "나누어지지 않고 나눌 수도 없는 동일한 한 하나님의 세 위격들(three hypostases.. of the one same undivided and undivisible God)"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위격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ὑποστασις [hupostasis ; 후포스타시스]는 '아래'를 뜻하는 접두어 ὑπο [hupo ; 후포]와 '서다'의 뜻을 가진 어간 ἱστημι [histemi ; 히스테미]의 합성어로 화로를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지탱해주는 세 다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실재, 본질, 기초, 근거, 확증'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실질(히1:3, 11:1)', '확신(히3:14, 고후9:4, 11:17)'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일성의 본질을 묘사하기 위해 교부들에 의해 '위격'이라는 뜻으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고 이것이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persóna [페르소나]로 번역된 것입니다. 페르소나에도 위격이라는 뜻이 있지만 페르소나는 '광대의 탈, 가면, 배우, 신분, 인격'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페르소나라고 번역된 천주교의 문서들을 통해 하나님의 세 위격은 세 인격으로 번역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섬세한 차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2 곱하기 2가 4가 아닌 3.9999999999999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많은 이단들이 배태되는 토양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세 위격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만 세 인격이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크게 빗나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질(essence)로 번역된 헬라어는 ουσια [ousia ; 오우시아]인데 삼일 하나님은 하나의 '오우시아' 안에서의 세 '후포스타시스'이신 분, 즉 하나의 본질 안에서 셋의 위격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위격은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본질은 나뉘어서는 안됩니다.

신성한 삼일성에 관한 이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해서는 위격과 인격, 본질(essence)과 실체(substance), 요소(element)와 본성(nature)이라는 단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하드 웨어에 대한 박식함이 없이도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듯이 삼일성에 관한 방대한 추구가 없이도 셋으로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이해만 있으면 삼일 하나님을 체험하고 누리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지방교회, 삼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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